전북 판화의 현실과 그 대안 모색
김 철 수
정보 소통을 위한 인쇄물의 기능을 담당했던 판화가 예술의 표현 장르로 규정 된 것은 1960년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 조형 예술협회(IAA)총회에서 판화의 개념을 회화나 조소와 차별화하여 규정하였고 이후 오리지널 판화가 ‘원판에 의한 복제성’과 ‘다수제작으로서의 복수성’을 특징으로 하는 장르인 점을 내세우게 되었다. 또한 에디션은 회화의 유일성과 인쇄물의 속성으로부터 판화를 보호하고 그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판화의 개념도 변모되었다. 현대판화의 범주에서 모노타이프의 판화가 국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가 하면 사진술을 이용한 판화 역시 실험적 판화로 인정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컴퓨터 매체를 이용해 제판작업을 모니터에서 실행하고 프린터를 통해 인쇄된 이미지를 판화의 영역으로 수용하는데 이의가 없는 추세다. 뿐만 아니라 조소예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캐스팅 기법과 종이가 아닌 곡면의 오브제인 드럼통이나 바위위에 찍어내는 등 평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실험작들도 등장하였다. 전통적 판화의 개념인 평면성과 복수제작 그리고 장식성 등이 허물어지는 오늘의 상황에서 판화 예술은 분명 과거의 그것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현재 국내 판화 예술계에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기관으로서 판화과 또는 판화전공 분야가 설치된 대학은 대학원 7여곳, 학부의 경우는 4곳정도가 있으며, 이외에 많은 예술 대학에서는 판화관련과목을 개설하고 동아리 활동을 통해 전시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우선 전북만 하더라도 전북대, 우석대, 원광대, 전주대 등에서 판화관련 과목을 개설하여 지도하고 있으나 아직도 전라북도는 타지역에 비하여 다른 장르보다 활성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북 판화예술의 침체는 화단 전반에 나타나는 침체현상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 진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전북판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판화의 침체현상은 판화예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부족에서 가중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대중이나 심지어 그림에 종사하는 사람조차도 판화가 회화의 하위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물론 그들이 판화예술의 기법적 다양성과 표현의 차별성 그리고 미학적 가치 등을 분별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데 연유한 것이다. 중등학교에서 목판화와 고무판 정도의 체험을 지닌 대중이 다양한 기법으로 찍힌 동판화와 석판화 그리고 컴퓨터 프린트, 디지털페인팅 등의 확장된 현대판화의 작업과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중적 확산을 위한 판화미술제 등의 전시 행사 외에 판화매체를 제대로 수용하여 안목을 높여 줄 수 있도록 판화 알리기 위한 이벤트 개최, 판화체험 기회 제공 및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이론이 아닌 실제 체험을 통하여 판화의 기술과 창조성, 예술성을 익혀 주어야 한다. 또한 대학교육과 관련하여 미술대학 예술관련 학과에서 판화과목을 정례화함으로써 현대판화의 다양한 실험적 기법의 체험기회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이다. 현장에서 이미 장르간의 경계가 통합되고 다양한 기법 사이의 혼재현상이 활발히 진행되는 것을 고려할 때 대학에서의 기초 실기와 함께 이에 대한 체험과 숙련과정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판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 특성화내지는 차별화다. 판화는 다양한 기법이 존재하고 속성상 기법이 다른 장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중요하며 기법을 숙련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따른다. 목판화에서 시작된 판화는 동판화에서 석판화로 다시 오프셋 기법과 최근의 실크 스크린 기법까지 이어왔는데 자동화된 인쇄술로 인하여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단지 노동집약적인 예술산업에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즉 고인쇄기법인 판화의 기법은 현대에는 하나의 표현수단으로서 순수예술가들에 의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 생산면에서 속도가 느리고 노동집약적인 기법을 숙련하기 위해서 판화 작가들은 오랜 기간 투자와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들이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하려면 경제적인 면에서 최소한의 보장이 있어야 한다. 결국 판화작품을 판매해서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일반인의 판화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공방시스템과 화랑등이 전무한 실정으로 전문적인 판화가의 등장은 요원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판화란 종이에 인쇄된 다수의 복제물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대중성의 지나친 강조에 따른 역기능이 문제가 되고 있다. 판화 예술이 소수 특수층의 문화소비 독점 현상을 타개하고 더 많은 대중에게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나 대중화라는 미명하에 판화작품의 가격과 예술적 가치를 간접적으로 하락시키는 요인이 적지 않기 때문에 전문적인 화랑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판화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작가 자신이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전통판화기법을 심화해 정통성을 확립하고 판화의 특성을 살려 방법적 측면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시장의 활성화로 연결되며 이러한 일은 결국 판화가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전문적인 판화가가 아니더라 하더라도 공방에서는 기술과 설비등을 제공하기 때문에 예술적인 역량만 있으면 다른 분야의 작가라도 취급할 수 있다. 이에 어느 누구라도 쉽게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기구와 설비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공방의 설립이 최우선적으로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달리, 피카소 등등 많은 유명작가들도 판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판화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판화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화랑이 있으며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 강조하건데 판화는 다른 장르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매체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침체된 전북판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판화에 대한 이해와 열정적인 관심과 따뜻한 배려와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판화 상식)
오리지널 판화 와 에디션 넘버
판화 작품을 보면 하단부에 연필로 A.P, 3/50 이나 작품제목, 작가사인, 제작연도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작가가 찍어낸 작품의 제한된 매수를 밝히게 되어 있고 찍은 후에 판을 파기하고 흠집을 내어 더 이상 찍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오리지널 판화의 규정에 의한 약속이므로 극히 제한된 매수로 판화 개개의 오리지널리티를 높이기 위함이다. 보통 판화는 전문가인 경우 20장에서 50장 찍는 것이 예사이다. 여기에서 50장의 판화를 연속해서 찍었을 경우(Edition) 숫자를 기입하게 되는데 이것을 넘버링(Numbering)이라고 한다. 20/50은 50장을 찍은 판화중 20번째 작품이 되는 것이다.
1/50 , 2/50 … 50/50 : 찍은 매수의 일련변호
A.P (Artist`s Proof) : 작가 보관용 참고작품
T.P (Trial Proof) : 실험판화, 연습판화
C.P (Cancellation Proof) : 모든 판화 작품을 다 찍고 난 후 흠집을 내어 찍어 낸 판화
P.P (Presentation Proof) : 선물용, 교환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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