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ㅁ 사소한 행복 ㅁㅁ/ㅁㅁ -- 나의 글

[스크랩] 나의 화두!!

아리랑33 2006. 7. 6. 11:24
요즘 나는 남편의 화실에 나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 까지 참으로 긴 시간을 돌고돌아 이곳에 있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그 그림때문이었다.

처음 교직에 발을 디뎠을 때에도 나는 미술 선생님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때의 미술 선생님은 초등학교에서 올라오신 분으로 유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 그림이 좋은지 어떤지도 모르고 그저 부러워 그 선생님이 그린 그림의 작품 사진을 한장씩 얻곤 하였다.

결혼 무렵이 되어 만일 결혼한다면 나는 화가랑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 그것부터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행여 좀 배워볼까 하여 남편을 꼬드겨 일요일에 스케치나가는 화우회를 조직하면 어떠나고 부추겨서 화우회를 조직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그리라고 선전은 하면서 나만은 철저히 따돌리는 것이었다.

"너 나까지 그림그리는 것 막을래?"
일요일은 온전히 그림그리러 나가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왔다. 아니 사람들까지 사귀어 이제 언제 어느때고 놀러 나가 매일 매일 술과 바둑의 속으로 날을 새고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나는 연년생인 아이들에 지치고 서러운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렇게 6년을 지냈다. 그 사이에 붓글씨도 좀 배워보고, 피아노도 배워보았으나 모두 내 소질 밖이었다.
남편이 교직을 그만두고 작업실을 운영하는데 나도 좀 가서 그려보고 싶었는데 그때 역시 내가 들어갈 틈이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남편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급기야 나는 반란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내가 월 몇 백만원을 버는데 그깟 단돈 10여만원 때문에 남편에게 구구절절히 매어 살아야 하는가? '
나는 회의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곳에 등록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동안 남편을 위해 쏟은 마음은 이루 헤아릴 길 없지만 그런 나에대해서 도대체 남편의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그런 생각에 조금만 빠져들어도 눈물이 시도때도 없이 흘러 내렸다.
그런 나의 행동이 남들에게 정말 이상스럽게 비쳐졌을 것이다.
혹자는 나에게 남편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게 아니었다.
계속 갈등이 깊어지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눈물흘리는 내모습에 남편은 그만 손을 들어 버렸다.

드디어 남편은 나에게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허용하였고, 멋진 이젤과 붓, 파레트 등을 마련해 주었다.
자나깨나 나는 그림 생각을 한다.
시간이 조금만 남아도 작업실로 향한다.
그리고 이걸 그릴까 저걸 그릴까 고민을 한다.
항상 남편은 말하곤 하였다.
색깔과의 싸움이라고.

그동안 나는 남편을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이유는 그림도 잘 그리지 않고 뭐 그려놓은 그림도 그저 그렇게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끔 그룹전을 하면 남편이 돌아와서 나에게 하는 말이
"나에게 색감이 좋다고 말해."
그럴때마다 나는
"그럼 남의 그림보고 나쁘다고 하나? 그저 겉치레 말이지."
"남들에게 그런말 잘하지 않아."
남편은 계속 나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말을 하였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그려놓은 엉터리 그림에 남편의 손이 한 번만 지나가면 요술처럼 살아나는 것이었다.
"아! 신기하다. 나는 왜 이런 색이 나오지 않지? 정말 이제 생동감이 있네....."
남편은 그때마다
"왜 한가지 색만 고집하냐. 얼마나 다양한 색이 있는데. 그리고 왜 그리 색이 더럽느냐. 색을 깨끗하고 경쾌하게 사용해라. 그리고 고정관념을 탈피해라..... 욕심부리지 말고 순수하게 그려라." 등등의 말을 하였다.

어쨌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생각 먹은대로 색이 나오지 않아 색을 칠해놓고 나면 영 꺼름찍하였다.

오늘 일이다.
남편의 개인전 팜플렛을 다시 보게 되었다.
며칠전 나는 석류를 그렸었다. 나는 책에 나온대로 그린다고 그렸지만 그대로 되지도 않고, 그저 이색저색 마구 잡이로 칠했다. 그런데 남편이 그린 석류그림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얼마나 색이 곱고 예쁘고 보면 볼수록 '아!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으로 보고 또 보고 하였다.

그리고 또 어제는 바다풍경을 그렸는데 하늘과 바다의 색을 칠하는데 아주 단순한 푸른 빛 하나도 내마음대로 되지 않아 두번세번 칠했더니 완전히 떡칠이 되어 여행갔다가 늦게 돌아온 남편이 보고 "이게 뭐냐!"고 하였다.
역시 팜플렛에서 여러 종류의 바다그림과 또 하늘의 색깔과 섬의 색깔을 보았다. 내가 찾았던 색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나는 왜 이런 색을 만들지 못하지?' 그럴 것이다. 남편은 35년을 그림과 싸우고 있다. 이제 겨우 보름도 되지 않은 내가 주제 넘게 왜 안되는가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참으로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이 참으로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남편에게 함부로 말했던 그 말들에 대하여 남편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마도 내가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면 영원히 이 느낌을 없었을 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우려한다. 내가 행여 남편이 하는 일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하여....
며칠전 우교수부부, 예총회장 부부와 저녁식사를 하는데 내가 남편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우려의 말을 하였다.

나는 일언지하에 "그건 우교수님의 철학이다. 왜 그렇게 우려하는가. 전혀 그런 걱정말아라."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나는 남편의 능력이 부럽다.
그동안 남편에 대하여 함부로 했던 말들을 모두 거두고 이제 참으로 동반자로서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 그림 정말 좋아요. 내가 당신만큼의 능력을 지녔다면 아마 나는 지금쯤 유명화가가 되있을 거에요. 열심히 그리세요. 예전에 나는 몰랐는데 지금은 당신의 그림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이 팔릴까 팔리지 않을까 걱정말아요. 그리고 싶은대로 그리세요.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이제 남편에 대한 나의 서러움과 화를 모두 끊으려 한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남편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만 생각하려 한다.

남편은 나의 화두이자 그림 역시 나의 화두이다.

남편과 그림 모두 나에게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출처 : ㈜그린이와 병하네 ⓔㅹ집™
글쓴이 : 아리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