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휴먼다큐 사랑을 보았다.
삼년전부터 치매에 걸린 엄마를 부양하는 딸이야기.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억척스럽게 일을 하여
다섯자녀를 대학까지 키워냈다.
그런데 삼년전 치매가 진행되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막내딸은 자기가 모셔야 겠다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아파트로 모시고 온다.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편은 일을 갔다 와서는 늘 장모방에 들어가 대화를 하고
이런 모습을 보는 아이들 역시도 할머니를 싫어하지 않는다.
본동댁이라 불리는 어머니.
그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 시집가서 살게되 붙게 된 이름 본동댁.
그 본동댁은 시시때때로
밭에 콩심으러 간다고, 때론 배란다에서 바라다보이는 빼곡한 아파트들을 보면서
본인의 피같은 땅을 누가 빼았아 갔다고 믿어 그 땅을 찾으러 가야한다고
나갈 문을 찾아 헤매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나누는 어머니.
치매노인을 교육하는 곳에 매일 아침 나가는데
그곳에 나가면 일당을 준다는 말로 꼬드겨
열심히 그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어머니의 치매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진찰 결과
삼년전에는 30점 만점에 17점 정도였으면
삼년지난 지금은 30점 만점에 7점정도니
나름대로 어머니를 최선을 다해 모신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때 까지 최선을 다해
모실 것이라는 것을 그 다큐를 보면서 누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바로 치매걸린 나의 엄마 때문이다.
이 다큐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불편하긴 하지만 걸어다니셔서
시골집에서 열흘정도 모시기도 했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은
병상침대에 누워 생활하신다.
언니는 엄마와 늘 함께 하기때문에
엄마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엄마때문에 웃고, 엄마때문에 운다고 했다.
이제 나의 얼굴과 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동생 자영이는
"언냐, 조금이라도기억이 남아있을때 엄마한테 얼굴 보여드려.
엄마 돌아가신 후 울지말고 살아 계실때 자주 찾아 뵈"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우리엄마는 불사조처럼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느긋해지는 것이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를 바꾸라 한다.
엄마는 전화기만 들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뭐라 말해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언니는 옆에서
"엄마! 인정이야. 둘째딸 인정이. 엄마 인정이냐? 이렇게 말해"
옆에있는 언니의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전해진다.
그제야 엄마는 그대로 따라서
"인정이냐. 둘째딸."
그리곤 그게 끝이다.
내가 아무리 엄마를 외쳐도 아무 대답도 없다.
다시 옆에서 언니가 뭐라 말하지만
역시 아무 대답도 없다.
전화를 돌려받은 언니는 엄마에 대해 얘기 해준다.
그래도 거동은 못하지만 정신은 좀 좋아졌다고.
음식도 잘 드신다고.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지난번에는 음식을 전혀 드시지 않아
애를 탄 언니다.
올해 여든아홉.
엄마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것은
큰아들에 대한 무한 신뢰와 자부심이다.
큰아들만은 잘 기억하신다는 어머니.
큰아들만 기억하든
아니면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든
그래도 자식곁에서 사랑받으며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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