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사람을 참 많이 만났다.
찬영엄마도 그 중 하나이다.
우리 앞집으로 이사온 새댁이 있었다.
처음에는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오지랖 넓은 시어머니가 찬영이네집에 대해 알려주었다.
남편은 조선일보 기자인데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조선일보 전주지사에 근무하는 기자 한분이 일본으로 파견근무 가는 바람에
1년간 근무하게 된 것이다.
신문기자이지만 정말 기자냄새가 나지 않는
맑은 사람이었다. 이름은 '김성현'
찬영 엄마는 예전 광주교육감의 딸이다.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데 '안정주'
독실한 크리스챤이면서 특히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집안에서 많이 보고 자란 탓으로
남에게 진심을 다해 도움을 주었다.
찬영이는 그 새댁의 첫 아들이다.
급한 일이 있을 때에 찬영이는 우리집에서 놀았다.
특히, 시어머니는 찬영이에게 밥을 먹이곤 했는데
특이하게도 고춧잎장아찌를 매우 좋아하여
밥을 잘 먹지 않다가도 그 고춧잎으로 밥 한그릇을 비우는 것이었다.
잠자다가 깨어 찬영엄마가 없을 때에는
할머니를 부르면서 우리집으로 놀라 달려오곤 했었다.
그때 당시
우리집에는 나의 시댁 조카도 함께 살았다.
큰집 딸이었던 은희는 그때 간호보조원 양성소에 다니고 있었는데
찬영이 엄마가 첼로 레슨을 해서 번 돈을 은희와
또 가끔 놀러오는 큰집 둘째 병훈이에게 아낌없이 주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어려워할까봐 나에게는 비밀로 하고 말이다.
가끔씩 구두티켓 등이 생길때면 그때도 예외없이 그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의 결혼기념일, 아이들의 생일, 시어머니의 생일등에는 꼭 선물을 주곤 했는데
어머니의 70세 생신날에는 정말로 비싼 좋은 옷을 선물을
해서 놀랐다.
자신은 남이 버린 가구를 주워다 리모델링을 하여 쓰면서 말이다.
어느날이었다.
그당시 건강자석팔찌가 유행이었는데
아마 그걸 선물로 받았었을것이다.
그런데 그 건강자석팔찌는 순금색으로 한냥이 훨씬 넘는
참으로 고급스런 팔찌였는데
찬영엄마는 그 팔찌가 정말로 순금팔찌라 여기고
어머니게 선물을 했었다.
내가 감동을 한 이유는
순금이라면 정말 값나가는 물건이었을텐데
그것을 기꺼이 어머니에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것이 도금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말이다.
그 뒤로 광주로 이사를 가게되었고
가끔 만나면 늘 넘치는 대우로 어찌할 바를 몰랐었는데
지난 몇년전 아들이 광주교도소에 군인으로 근무를 하면서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 이후로 소식이 끊겼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찬영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시골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 즐거움을 나누다보면
순창에서 멀지않은 광주에 있는 찬영엄마를 꼭 불러서
맛난 음식도 주고, 아낌없이 보답을 하고 싶었다.
이번 음악회에는 가까스로 집 전화를 찾아서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오후에 선약이 있어 7시에 진행되는 음악회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한번 다녀가겠다면서 우리집에 왔는데
그 넘치는 사랑 예전과 다름없어
언제 마련했는지
내가 입을 옷과 과자등을 사왔던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준비하는데 떠나기 직전까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아!
찬영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어려웠던 그 시절
천사처럼 나타나
나의 큰 힘이 되어주었던 찬영엄마!
그 세살아이였던 찬영이는
대학교 1학년이 되어있었다.
용돈을 주고 싶었으나
경황중에 그냥 보내고 말았다.
아직도 우리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는 찬영이.
앞으로 쭈욱 변치않는 정 나누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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