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 종마목장 가는 길
푸른 하늘이 그립다.
오락가락하는 장마전선 때문에 하늘엔 먹구름이 걷힐 날 없다.
정말이지 언제 푸른 하늘을 보았는지 까마득하다.
국토를 할퀴고 지나간 수해로 시름에 잠겨있는 수재민을 생각하면
더 이상 비를 뿌리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맙다. 하지만 이제는 먹구름이 걷혔으면 좋겠다.
하늘이 푸르게 열리고 비를 뿌리는 일이야 하늘이 하는 일.
인간의 능력 밖이라 소망으로 접어 두지만 이렇게 답답할 땐
풀밭이 펼쳐진 초원이라도 보고 싶다.
수해고통주간에 얼빠진 친구들이 찾아갔던 인위적인 그린 필드가 아닌
녹색초원 위에 한가로이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그런 초원이 보고 싶다.
목장 가는 길
그렇다고 징기스칸으로 개명을 준비하고 있는
울란바트로행 티켓을 끊어 몽골 초원으로 날라 갈 수도 없고
제주도 목장이나 대관령 목장을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것이 도시인들이다.
회색빛 콘크리트에 갇혀 푸른 하늘마저 보기 힘든 게 서글픈 도시의 이방인들이다.
그러한 도시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초원이 있다.
멀지도 않다. 서울과 경기도를 가르는 시경계선(市界)에서
승용차로 10분 코스에 그러한 초원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원당종마목장이다.
서울 근교에 산재해 있는 농장과 목장이라는 이름의 업소는 영악한 상술이 번뜩이지만
이 목장은 장삿속과는 거리가 먼 참으로 평화로운 곳이다.
푸른 초원이 싱그럽습니다
원당종마목장은
우수한 경주마를 생산 보급하기 위하여 한국 마사회에서 운영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설립 목적과 달리 11만여 평에 달하는 푸른 초지가 잘 가꾸어진 초원위에
한가로이 말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특히 이른 아침 안개에 젖어 있는 풍광은 가히 압권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소 섭외를 맡고 있는 헌터들이
“산책로?” 하면 1순위로 꼽는 곳이 원당종마목장이다.
유럽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그동안 <야망의 전설> <불새> <그대 그리고 나> 등
수많은 드라마와 CF를 통하여 우리의 눈에 익숙한 모습이지만
정작 이곳이 그 드라마의 배경이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원당종마목장
서삼릉 권역이었던 이곳이 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4년. 88올림픽 장애물경기장으로 건설되면서 부터다.
올림픽 이후 종마목장으로 변신하여 우수 경주마 보급에 전념하던 이곳이
97년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장소 물색과 섭외가 직업인 헌터들에게 찜 당하여
드라마 헌터나 사진작가들에게 알려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은평구 구파발을 지나 서울과 경기도를 가르는 경계선에서
벽제 문산 방향으로 5분쯤 달리면 예전에 검문소가 있던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 하면 지하철 3호선 삼송역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분은 5번 출구로 나와 13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한 가지 불편한 것은 배차시간이 20분 간격이라 버스를 놓치면 지루하다.
두려움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이가 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삼송역에서 직진하다
농협대학 표지판 쪽으로 우회전하여 5분쯤 달리면 원당종마목장이다.
입구에 다다르기 전부터 예사롭지 않은 길이 방문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자동차 2대가 겨우 비켜갈 수 있는 좁은 길에 은사시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다.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이국적인 풍경이다.
원당종마목장 입구에 다 달으면 3개의 시설과 마주친다.
서삼릉과, 농협 젖소 개량부, 그리고 종마목장이다.
각각 영역은 다르지만 씨하고 관련이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기이하다.
원당(元堂)이라는 지명이 명당의 으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의 산수가 보통은 아닌가 보다.
현판
젖소개량부는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소의 정액 대부분을 공급한다.
인공수정에 의하여 번식하는 소의 씨 공장인 셈이다.
종마목장에는 1마리에 5억을 호가하는 씨수말 더로브래드를 비롯하여
육성마, 연구마 등이 귀족 대접을 받으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하지만 종마목장이라 해서 귀족마(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허접한 수말도 있다.
도우미 숫말이다.
우수 경주마는 식용으로 사육되는 소처럼 인공수정을 시키지 않고 자연 교배를 시킨다.
이때 발정이 완료되지 않은 암말이 종마(種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흥분 상태로 이끄는 역할을 도우미 시정마가 한다.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사정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종마의 몫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여 동물적인 본능을 결정적인 순간에 차단당하는 가련한 수말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도우미 수말은 일찍 죽는다 한다.
효창원. 조선왕실 묘제는 릉(陵).원(園).묘(墓)로 구분됩니다.
서삼릉은 조선 11대왕 중종과 계비 장경왕후 희릉
(중종은1562년 명종조에 강남 선정릉으로 이장)
12대 왕 인종과 인성왕후 효릉, 25대왕 철종과 철인왕후가 잠들어 있는 예릉이 있는 곳이다.
또한 능역에는 영조의 세손이 묻혀있는 의령원.
정조의 세손이 잠들어 있는 효창원이 있으며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 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비공개로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예릉이다.
떠꺼머리 총각 원범이를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불러올려
왕좌에 앉힌 가문은 정조 이후 3대에 걸쳐 국구를 배출하며
63년 동안 국정을 농단했던 권문세족이다.
그 버팀목은 순조비 순원왕후와 철종 비에 오른 김문근의 딸이었다.
그 딸이 철종과 나란히 누워있는 철인왕후다.
명당의 으뜸이라는 원당.
이곳에 묘를 쓰고 가문은 전성기를 구가했을지 모르지만 흔들리는 왕국은 비틀거리고 말았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서삼릉 매표소와 나란히 있는 원당종마목장 입구를 통과하면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더불어 말의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역시 목장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유목민들이 땔감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는 마분(馬糞)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은 얼굴을 찡그린다.
그래도 연인들은 초원이 싱그럽고 즐거운 표정이다.
진녹색의 초원을 구획하는 하얀 목책(실은 프라스틱이지만)이 그림 같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
어미 말을 종종걸음으로 쫓아다니며 젖을 빨고 있는 아기 말.
시간에 쫓겨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한가로운 풍경은 충격이 되어 가슴을 후빈다.
원당 종마목장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자연을 잃어버리고 콘크리트 숲속에 갇혀있던 도시인들이
목장 길을 거닐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가긴 어딜 가, 나 여기 있잖아”
궁색한 답변으로 자신을 위로 하지만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초원의 풀잎이 대답하는 것 같다.
“말들에게 물어봐”
지평선 너머 푸른 하늘이 있겠지요
이때 하늘을 보자.
비록 지금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지만 시간이 가면 파란 하늘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초원을 바라보자.
싱그럽지 않은가.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렇게 시원한 느낌을 맛볼 수 있는 초원이 도시 가까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연인은 연인끼리 가족은 아이들과 함께 하루 나들이로 너무나 좋은 곳이다.
원당종마목장은 매주 화요일 휴장하며 입장료는 없다.
주차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좋지만
마을버스 종점에서 1.5km 정도 걸어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연인들끼리라면
데이트 코스로선 더 할 나위 없이 운치 있는 산책길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 sbs에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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