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기적생환 최강식·박정헌씨 그후 1년 |
[한겨레] 살아있는 한 삶은 매듭지워지지 않습니다. 어느 한 순간, 소원을 이루고 주변에서 갈채 받고 그러다가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 뒤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지난 한햇동안 매주 수요일에 발행됐던 36.5도 섹션에 소개된, 남다른 사연을 간직한 이들 가운데 몇 분을 골라 기사가 나간 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따듯한 기운이 독자 여러분의 새해를 밝게 하기를. 절망 도려낸 자리에 새살이 ‘몽글’ 여전히 구리 빛인 산사나이 박정헌씨(35). 경남 진주에서 다시 만난 그가 손을 내밀었다. 9개월 전 붕대에 칭칭 감겨있던 손이었다. 양손
엄지 외에 손가락들은 모두 잘려 뭉뚝했다. 그 뒤를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최강식씨(27)가 다가왔다. 그가 내민 손은 더욱 짧았다. 양손 열손가락
가운데 오른손 엄지 외엔 모두 잘려 있었다. 손을 잡자 연체동물처럼 부드러운 새 살의 감촉이 전해졌다. 끊어진 손가락 너머로 하얀 치아들이 햇살
아래 설산처럼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1년 전 히말라야에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빙벽인 촐라체 북벽을 등정하고 하산하던 중 조난당한 이들(<한겨레>2005년 2월
17일 16면)이다. 아직도 개구장이같은 장난기가 있는 최씨(경상대 체육학과 4년 유학 중)가 하나 남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이거 하나만 깎으면 손발톱 깎기는
끝이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고 농담을 했다. 주위 사람들이 “농담이 나오냐”고 할 정도로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그가 감당해야할 상황도
녹녹치 않았다. 최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지하철에서 장애인석에 앉았다가 어떤 할아버지로 부터 “젊디 젊은 놈이 왜 거기 앉아 있느냐”는 호통을 듣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화부터 났을 터였지만, 그는 “할아버지, 제가 발가락이 하나도 없어서 서 있기 어려워 앉았습니다”라며 공손하게 양해를
구했다. 조카들이 그의 손가락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를 때도 그는 “손발을 잘 안 씻으면 삼촌처럼 된다”며 천연덕스럽게 청결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손발가락 짧아지고 그를 보는 주위의 눈이 예전 같지 않아진 건 분명하지만,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은 오히려 밝아졌다. 그가 크레바스에 빠져 끈 하나에만 매달려
있을 때 단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정작 크레바스에 빠진 것은 그가 아니라 열손발가락을 모두 갖고도 늘 좌절하고
힘겨워했던 절망이었다. “사고를 불러온 촐라체행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내가 좋아 선택한 것인데요”라며 말했다. 최씨는 내년에 4학년에 복학에
체육교사 임용고사를 볼 생각이다. “엄지 손가락 하나만 성해도 못할 게 없어요. 남은 손가락 관절 사이로 젓가락 끼워서 젓가락질도 할 수 있고,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도
하고, 운전도 할 수 있다니까요.”
그가 하나 남은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열손발가락이 모두 성했을 때보다 더 넉넉해진 것은 최씨만이 아니었다. 박씨는 에베레스트, K2등
8천미터급 이상을 7개나 올랐고, 한 번 올라서면 되돌아올 수도 중단할 수도 없는 한계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알파인 등반의
최강자였다. 그만큼 두려울 게 없었고, 자존심이 강했다. 빙벽이나 암벽 등반가로선 생명이나 다를 바 없는 손발가락들의 마디 마디가 짧아져 힘을
쓰기 어렵게 되었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내 산이 높아 다른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던 내게, 하나 같이 고귀한 다른
사람들의 산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토록 여러 번 히말라야를 오르면서도 눈여겨보아지지 않던 파키스탄이나 네팔의 가난한 짐꾼들에게도 시선이 갔다. 그는 매트리스나 방한복조차
없이 천막 밖에서 밤을 지새우는 짐꾼들에게 매트리스와 옷을 보내기 위해 송년의 밤들을 쫓아다니며 강연을 해 1500만원을 모으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이 “엄마, 저 아저씨 손이 왜 그래”라고 놀라 움츠리면 “아저씬 아마존의 악어 사냥꾼이야. 악어와 싸우다가
악어들이 아저씨 손가락을 먹어버렸어!”라고 말해주곤 한다. 그럼 아이들은 “그대로 믿는다”며 박씨가 어린 아이처럼 웃는다. 둘은 29일 자신들을 구조해준 야크몰이꾼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사는 오두막이 있는 네팔의 마체르모로 떠났다. 1년 전 서로를 연결한 끈을
끊지 않고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이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던 히말라야에 손을 맞잡고 떠났다. 1년 만에 야크몰이꾼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환의 기쁨을 함께 누린 뒤, 발의 상태가 더 나은 박씨는 함께 간 다른 3명의 동료와 함께 1년 전 잃어버린 카메라 등이 든 배낭을 찾아
나서고, 아앨랜드 피크도 등반할 예정이다. 비록 대부분의 손발가락을 잃었지만 산악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박씨가 재출발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더 넉넉해지고, 행복해진 산사나이들이 지금 다시 히말라야의 설산을 오르고 있다. 진주/글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동생 크레바스 추락하자 형 로프 끊지 않고 사투 5일째 야크몰이꾼이 구조 1년전 그날 경남산악연맹 소속으로 형동생하던 둘은 지난해 1월 17일 촐라체 정상에 올랐다가 서로 로프로 연결한 채 하산하던 중 후배 최씨가 ‘지옥의
문’이라는 크레바스에 빠졌다. 최씨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크레바스에 떨어지면서 양발의 작은 뼈들과 발꿈치까지 부러져버렸고, 크레바스 1미터
앞에서 힘겹게 버티던 선배 박씨는 최씨를 잡아당기려다 갈비뼈마저 부러져 버렸다. 끈(자일)을 끊지 않으면 둘 다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형은 끈을 놓지 않았고, 강식은 2시간의 사투 끝에 크레바스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크레바스 탈출은 긴긴 고난의 서막일 뿐이었다. 둘은
살인적 강추위가 기승이던 설산의 노지에서 5일 간 잠을 자며 하산해 천신만고 끝에 야크물이꾼에게 발견돼 구조됐지만 그 때 걸린 치명적 동상으로
박씨는 열개의 발가락, 8개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최씨는 10개의 발가락과 9개의 손가락을 잘라냈다. 박씨는 동상으로 말라 비틀어진 손발가락을 잘라내면서 드러난 뼈를 지난 4월까지 팔뚝과 허벅지 등 여섯 군데에서 살을 떼어내 덮는 2번의
대수술을 했고, 지난 9월엔 붙어버린 손가락 마디마디를 분리하는 수술을 했다. 사고 당시 다리뼈가 부러져 엉덩이로 밀고 내려오느라 더 심한
동상을 입은 최씨는 지난 6월까지 입원하며 5번의 대수술을 받고, 지난달엔 마지막으로 붙어버린 손가락 사이 분리 수술을 마쳤다. 고등학교 때는
배구 선수로 코트를 누볐던 최씨의 발 길이는 발가락이 잘려 280㎝에서 215㎝로 줄어버렸다. 최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박씨는 4급 장애인, 최씨는 2급 장애인이 되었다. 조연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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