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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만의 방, 공간이 나를 치유한다

아리랑33 2010. 5. 25. 16:41

나만의 방, 공간이 나를 치유한다
“다락방은 몽상을 키우고 몽상가는 다락방에 숨어든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이런 다락방이 누구나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요? 잠시 세상에서 떨어져 숨어 있기 좋은 방, 귀 기울이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더 충만하고, 혼자라서 더 좋은 시간. 세상의 속도는 빨라지는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은 줄어듭니다. ‘나만의 공간’은 곧 ‘나만의 시간’입니다. 자기만의 시간을 위한 방을 가진 이들을 만났습니다. 그곳은 저 깊은 산골짜기이기도, 도심 한복판이기도, 넓은 자연의 품이기도, 카페 한구석의 낡은 의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충만해지는 그곳이 바로 ‘나의 작은 우주’라고 합니다. 작은 우주로 향하는 그들의 문을 두드려봅니다.

김욱선 작, ‘몽환의 도시, 경성’(2008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전시 중)

빈티지 컬렉터 김연화 씨의 다락방
숨어 있기 좋은 방, 함께해도 좋은 방
디자이너 김연화 씨가 빈티지 그릇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일본의 작은 상점에서 발견한 빈티지 컵. 어릴 적 할머니의 찬장에서 보았음직한 모양새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따뜻한 기운이 전해진다. 우연한 기회에 들른 부암동, 서울에서 태어나 서른아홉 해를 이 도시에서 살았건만 처음 와보는 동네. 시곗바늘을 수천, 아니 수만 바퀴 거꾸로 돌리면 도착할 수 있을까? 오래전 시계가 멈춰버린 듯한, 시골 읍내 같은 조용하고 아담한 부암동 풍경에서 전해오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계획도 없이, 그저 부암동 산자락 아래 좋은 방 하나 마련하겠다는 마음으로 틈날 때마다 들른 이곳에서 그동안 모아온 빈티지 그릇과 꼭 닮은 공간을 찾아냈다.

일제강점기에 지었다는 건물 2층 공간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낡은 마루가 삐그덕 소리를 내고 격자무늬 창틀에는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의 빈티지 그릇이 대부분 1940~50년대 것이니 공간과 엇비슷한 나이를 먹은 셈이다. 그는 이 낡고 오래된 공간을 10여 년간 모아온 빈티지 그릇으로 채우고 프랑스어로 ‘블랙 커피용 작은 컵’을 뜻하는 ‘데미타세Demitasse’(02-391-6360)라 이름 붙였다. 빈티지 컬렉션으로 채운 진짜 빈티지 공간에 앉아 있노라면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뚝 떨어진 기분이 든다. 핸드폰과 이메일을 잠시 잊고 손글씨로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시간. 경험해보지 못한 세월의 흔적에서조차 위안을 얻는 이유는 무얼까? 오래된 공간과 물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손길이 녹아 있다. 그가 빈티지 중에서도 유독 그릇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상 모든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상 그 무엇이 엄마의 손길보다 더 따뜻하겠는가. 카페인지, 그릇 가게인지, 다락방인지 모호한 공간. 김연화 씨가 의도한 그대로다. 자신이 이 공간에서 받은 정서적 만족과 위안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아무도 모르게 다락방에 숨어들고 싶은 이라면 누구라도 환영이다.

(왼쪽) 일제강점기에 지었다는 건물 구석구석에는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시대극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음직한 창틀, 천장의 서까래, 마루를 밟은 때마다 들리는 삐그덕 소리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지켜낸 건물은 빈티지풍이 아닌 진짜 빈티지 공간이다.

1, 3 그가 수집해온 수백 점의 빈티지 식기는 대부분 1950년대 전후에 북유럽에서 생산한 것이다.
2 1950년대에 필란드에서 제작한 유리 공예품으로 아라비아 사 제품이다.


동양학자 조용헌 씨의 휴휴산방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1 전라남도 축령산에 자리한 휴휴산방. 현판에 쓰인 ‘休休山房’이라는 네 글자가 ‘이 산속까지 오셨으니 쉬고 또 쉬어 가시게’ 하며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2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자연을 벗하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곳에 들르는 만큼 그는 집 안에 살림을 거의 들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집을 지은 스님이 쓰던 세간살이를 그대로 받아서 쓰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 비어 있는 공간에 홀로 앉아 먼 산도 바라보고 앞마당의 3백 년 된 매화나무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하늘이 흐리고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조용헌 씨는 휴휴산방休休山房을 둘러싸고 있는 편백나무 숲으로 향한다. 기압이 낮은 날, 도심이라면 거리에 가득 찬 매연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겠지만, 편백나무 산책길은 짙은 나무 향으로 가득 차 오르며 온몸을 씻어내린다. 조용헌 씨가 축령산 자락의 작은 흙담집 휴휴산방과 인연을 맺은 것은 5년 전이다. 몸과 마음이 쉬고 싶을 때 들러서 쉬어 가기도 하고 글도 쓸 요량으로 산속에 자리한 작은 집 하나를 구하던 차에 흙과 돌, 나무로만 지은 이 세 칸짜리 집을 만났다.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자연과 사이좋게 나누어 쓰는 공간. 어느 스님이 직접 지었다는 이 집은 수풀에 가려져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조용하게 은둔하기 좋은 집, 그가 바라던 그대로다. 사람이 잠 하나만 잘 자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며 그는 온돌방 아랫목에 잠시 쉬어 가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소나무, 오동나무, 편백나무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피면 사방으로 향기로운 나무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것이 아로마 테라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질 좋은 황토와 나무, 돌로 지은 숲 속의 집에서 청하는 단잠에 어찌 몸과 마음이 안식을 얻지 않을 수 있겠나. 그는 자연에 들어와서 사는 일은 내면의 평화를 중요시하며, 일상적인 가치를 포기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흔히들 전원생활을 이야기하지만 그 전원생활을 꾸준하게 지켜가는 이는 많지 않다. 자연 속의 생활을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자연을 보는 법, 자연을 즐기는 법도 배워야 한다. 산세를 보고 물의 흐름을 보는 법, 바위를 보고 나무를 보는 법을 알아야 자연에서 사는 법을 깨칠 수 있다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동틀 녘 들려오는 산새의 노랫소리에 잠을 깨고,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저녁 노을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산채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휴식이 담겨 있다.

3, 4 휴휴산방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한 풍경.


주부 이혜련 씨의 다실
나를 만나는 비움의 시간
주부 이혜련 씨에게는 한옥에 꾸민 작은 다실이 있다. 한옥이 비록 그의 소유는 아니지만 건넌방에 마련한 다실만큼은 ‘나만의 공간’이라 여기며 이곳을 찾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다실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시작된 인연이 6년째이니 이혜련 씨가 이곳을 자신의 공간처럼 여기는 것도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그가 찾는 다실은 바로 삼청동에 있는 ‘올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할 때, 복잡한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갖고 싶을 때 그는 이곳을 찾는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지라 이곳을 찾아오는 기분도 색다르다. 그가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녹차가 몸에 좋다고들 하니 가족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손님 접대에도 멋스러울 것 같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실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다도를 더 즐긴다. 단정한 매무새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전통 예법에 따라 차 한 잔 음미하면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차를 대접할 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에게 정성을 다해 우려낸 차 한 잔을 대접한다. 이혜련 씨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하루를 온전히 비우고 올물을 찾는다. 말 그대로 작정을 하고 오는 것이다. 올물과 오랜 인연을 맺어올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이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곳이라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기에 더없이 좋기 때문이다. 차 한 잔 즐기고 난 뒤에는 다실에서 더없이 평화롭고 한가로운 오후를 즐긴다. 따끈하게 데워진 온돌방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그의 다도 스승이자 친구인 올물의 주인장 김현숙 씨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이곳이 도심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비움을 시간을 갖는다.

(왼쪽) 올물의 건넌방 다실은 이혜련 씨에게 그의 개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호젓하고 한가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라 이곳을 6년째 찾고 있다. 올물의 정식 명칭은 올물전통차문화연구원(02-738-2154). 주인장 김현숙 씨는 이곳에서 전통 차 문화를 가르치면서 다실을 운영한다. 안방 다실은 주로 다도 수업을 할 때 교육장으로 이용하고 건넌방과 문간방 다실은 손님용으로 사용한다. 단 두 개의 다실을 예약제로 운영하기에 한옥의 정취를 만끽하며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기에 그만이다.

올물에서 마주치게 되는 작은 풍경들.

출처 : 노벨라핸드페인팅
글쓴이 : 초록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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